은혜나눔 및 간증
“ 추계 부흥성회를 마치고 ” 김송영 전도사
데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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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5 11:46
“ 추계 부흥성회를 마치고 ” 김송영 전도사
제가 하나님과 시간을 가지는 훈련을 한마디로 한다면 바로 묵상 훈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Thomas Merton’s 묵상집으로 매일 묵상을 하고 있는데 방법은 먼저 묵상지를 읽은 후 주님 앞에 조용히 앉습니다. 마음을 열고 내면의 소리를 잠재우고 제안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을 예수님께로 향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내안에 생각들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흩어질 때 마다 “예수님의 기도”를 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고독과 침묵의 시간 속에서 성령님은 나와 함께 운행하시는 것을 이 훈련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묵상의 훈련은 저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이 훈련을 하기 전, 저의 아침기도의 시간은 성경을 읽는 것과 말씀에 대한 묵상이었습니다. 보편적으로 “큐티”라고 합니다. 전 읽고 묵상하고 거기에 대한 제 반응들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년 전부터, 제 자신이 읽고, 생각하고 적기보다 하나님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훈련에 더욱 끌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전 꼭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제 Spiritual Director에게 설명했고 그분은 계속해서 그렇게 하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결국, 전 저의 깊음이 주님의 깊음을 부르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시편 42:7).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묵상 훈련을 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묵상을 하면서 얻은 결과는 제안에 조금씩 다른 이에 대한 관대함이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마음을 열고 침묵하는 것은 하나님 그리고 나의 생각과 의사가 다른 이들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영적인 틀을 가지고서 이번 부흥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장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의 간증은 그의 삶의 의미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몸부림이었음을 느꼈습니다. 그의 몸부림은 그를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하였고 통성기도를 통한 몸부림 이였습니다. 그는 마음을 열어 그의 감정, 목소리, 그를 아시고 그를 사랑하시고 또한 그를 그 고통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께 온전히 쏟아 부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이야기는 그가 어떻게 몸부림 쳤는 가만을 쳐 준 것이 아닌 왜 그가 몸부림 쳤냐 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통성기도는 그의 신앙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설교가 끝날 때 마다 장목사님께서는 통성기도를 연습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저희가 하나님께 진실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저도 이 시간에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함에 대해 목소리 높여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은 마치 나의 영혼에서 주님이 나에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언제 다른 이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 적이 있느냐?” 그리고 저는 솔직하게 주님께 대답했습니다. “주님!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품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통성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소리를 끄집어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뜨겁게 사랑하라”라는 음성 이였습니다.
부흥회가 끝난 후, 저는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묵상기도이냐 아니면 통성기도냐?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혹시 묵상기도를 버리고 통성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인가? 저는 이런 고민을 가지고 조용히 마음을 열고 주님의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평상시와 같이, 저는 Thomas Merton (이분은 진정한 저의 영적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그는 갈라디아서 5장 6절 말씀을 인용하였고 그 말씀은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마음에 말씀하시면서 제 고민에 대한 응답 해 주셨습니다. 묵상기도나 통성기도나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묵상기도가 제게 준 선물은 다른 이들을 관대할수 있는 마음과 또한 진정한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또한 통성기도는 영적 무기력함을 뛰어넘어 하나님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나타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묵상기도할때 조심해야 되는 것은 우리의 죄성은 계속해서 영적 무기력함을 하나님의 임재로 착각하는 위험한 실수를 하게 될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통성기도 역시 그냥 아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6장 7절에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한국사는 올케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녀는 성당에 다니는 카톨릭신자인데, 하나님께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전 그날 전화를 들고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올케는 제가 그녀의 마음을 읽고 그녀의 마음의 기도를 소리내어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 소리로 기도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언니와 통화하면서 느낀 것입니다. 언니는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그녀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판단하려고 하고 오만한 태도 보다 깊은 연민을 가지고 그녀의 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하나님께서는 부흥회를 통해서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