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눈이 부시게...’
송종남 목사
성도님들 중에 아픈 분들이 있습니다.
연로하셔서 몸이 쇠약해지신 분들도 있고, 갑자기 몸에 이상이 와서 아픈 분들도 있고, 넘어지거나 자잘한 사고로 아픈 분들도 있습니다.
또는 마음이 아프신 분들도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픈 분들도 있습니다.
많이 아프신 분들이건, 조금 아프신 분들이건, 마음이 아픈 분이건, 몸이 아픈 분이든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많이 힘들기에 빠른 회복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두려워하는 질병이 많이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치매라는 병이 아닌가 합니다. 이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증상이 어떠한지 의료전문인이 아닌 제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러나 확실히 나타나는 증상 중에 하나는 기억력이 점점 없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망증이 심해지면 혹시 나도 치매가 아닌가 해서 가슴이 철렁해진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지우개 하나가 나타나서 기억을 하나하나 지워갑니다.
나이가 들면 육체의 노화가 오듯이 기억력도 노화가 와서 예전보다 못한 기억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겠는데, 그런데 그런 기억력 감소가 아니라,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외출을 했다가 갑자기 집을 찾아오지 못한다든지, 갑자기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 계신 장모님은 올해 93세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거동을 못하신지는 벌써 몇 년이 되었고, 지금은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촛불이 타들어가듯이 장모님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육체의 기운도, 기억력도 완전히 약해지셔서 금방이라도 그 촛불이 스치는 바람에라도 꺼질까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90평생 사시면서 알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도 이름도, 그렇게 사랑했던 딸들의 이름과 얼굴도 다 잊어버리고, 오직 한명, 당신을 모시고 살았던 큰 딸만 기억하고 알아보신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매를 이렇게 두려워하다보니, 그것을 조금 늦춘다거나, 예방하는 방법도 많이 접합니다.
그리고 치매에 걸린 분들을 소재로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도 종종 나옵니다.
그런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면서 대부분은 너무 슬프고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어떤 분의 추천으로 마지막회만 보고도 큰 감동을 받은 드라마 하나가 있습니다.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입니다.
역시 치매를 주제로 만든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이드라마를 보고는 그렇게 슬프지도, 또는 그렇게 비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을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는 주변 사람들, 가족들의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남편의 말에 며느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요. 어머니가 못 알아보면 내가 알아보면 되지요‘
눈이 오는 어느 날,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병실에 보이지 않자 직원들과 아들은 그녀를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나는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밖에서 눈을 쓸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아들은 어릴 때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의족을 끼고 평생 살아가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눈이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그 아들이 학교에 가는 길에 행여나 넘어질까, 미끄러질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들이 지나가는 길의 눈을 말끔히 치웠습니다. 그런데 아무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지금도 어머니는 눈이 오는 날, 얼른 밖으로 나가서 눈부터 치우고 계셨습니다.
평생 아들의 삶 앞에 쌓인 눈을 치워주신 분이 바로 어머니였다는 것을...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지금에서야 깨달은 아들은 그날 오열을 하고 맙니다.
아들은 어머니께 묻습니다. 엄마는 살아오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한 날이었느냐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대답합니다.
‘내게 행복했던 날이란 대단한 날이 아니고, 그냥 저녁 즈음에 동네에 밥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밥을 앉혀 놓고 아장아장 걷는 아들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서 하늘을 보면 하늘엔 노을이 졌다. 그것을 바라볼 때가 가장 행복 했단다’
치매는 두려운 병인 것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것에 안 걸리려는 노력을 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소원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받아들여야하는 것도 우리의 인생의 여정중에 속해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인생에 불행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고, 억울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했던 기억부터 불행한 기억까지 그 모든 기억‘덕분에’ 지금까지 버티고 살았다는 말이 절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인생은 때론 힘들고 아프지만, 그리고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고,눈이 부시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그런 날임을 발견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날은 나중에 다가올 어떤 날도 아니고, 대단한 일이 있는 날만도 아닙니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다 행복한 날이 될수가 있습니다. 아니, 매일 주시는 하루하루가 다 눈이 부신 날입니다. 좋은일만 있어서가 아니라,
선물로 주어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치매, 슬프고 비참한 것은 맞지만, 당사자는 어쩌면 살면서 괴롭고 아팠던 모든 기억들을 지우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만 기억하며 살고 있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오늘이 혹시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면
치매에 걸린 주인공 할머니의 마지막 대사를 들어 보시기바랍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사랑하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우리의 기억이 다 지워지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온다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려고 우리를 손바닥에 새겨 놓았다고 하셨으니
우리들 인생에 다가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오늘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감사한 것임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