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송종남 목사
요즘은 한국이나 미국에서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학생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하는 학교 급식제도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연세가 50이상(?) 되신 분들은 학교 다닐 때에 도시락에 얽힌 재미있는 추억 한두개씩은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가난 했던 시절, 김치하나에 계란 후라이 하나만 얹은 도시락이었어도 그것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버스에서 도시락 통을 받아준 여학생의 무릎위에 올려놓은 도시락에서 하필 김치국물이 새어나와서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던 사춘기 소년의 구겨진 추억,
어떤 아이들은 그 도시락조차도 가져 오지 못해서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든지, 친구들이 나누어 주는 점심을 먹었다든지... 하는 얘기를 들으면 요즘 아이들은 어느 나라 얘기냐고, 아주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겨울이면 난로위에다 도시락을 데우기도 했는데, 그 도시락이 데워지면서 도시락 밑에 깔은 김치가 익으면서 나는 구수한 냄새가 학교에 진동하기도 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오기도 전에 선생님께 들키지 않고 몰래 몰래 도시락을 까먹었던 아슬아슬했던 추억도 있습니다.
사는 것이 거의 비슷비슷했고, 풍부했던 시절이 아니었어도 ‘도시락’을 떠올리면 잊혀진 학창시절 친구들 얼굴과 함께 추억이 줄줄이 올라오고, 다들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들이 바뀌면서...언젠가부터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는 것이 사라지고 학교 급식이 보편화 되었습니다.
영양사의 지도하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영양도 골고루 섭취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고 편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요즘 아이들은 도시락에 얽힌 소소하고 재밌는 추억은 없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올해부터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을 벌입니다.
일회용 컵은 아예 사다 놓지도 않을뿐더러 각자 자기 컵과 도시락통을 가지고와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설거지는 물론이고 종이컵, 종이접시를 안 쓰니 쓰레기를 완전히 줄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 한번 광고를 했고, 설교시간에 잠깐 언급을 했는데,
그 다음 주일부터 거의 전교인들이 다 자기 도시락통을 가지고 와서 점심을 드시고 각자 집에 가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라는 곳이 사실 얼마나 말이 많은 곳입니까?
아무리 좋은 일을 추진하려고 해도 다들 생각이 같지 않으니 불평이 있게 마련인데,
저는 이번에 도시락통과 컵 가지고 다니기 운동을 펼치면서 우리교인들의 성숙한 의식에 새삼 놀랐고 감사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른들은 그냥 교회 접시를 사용하시게 해도 되는데 그분들까지도 식판을 가지고 오셔서 동참하시는 모습에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코로나를 겪고나서, 환경에 대해서 기후위기에 대해서 거창하게 떠벌리지 않아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해 나가는 우리교인들을 보면서 우리교회는 정말 성숙한 교회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교회, 우리교인들 최고입니다.
학창시절 갖고 다녔던 추억의 도시락, 그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 떠올리시면서
빈 도시락통 열심히 갖고 다니셔서 건강도 챙기시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회용품은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우리의 개인 생활에서도 사용하지 않기를 적극 실천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게넷사레 호숫가에도 도시락 통을 들고 갑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생선을 손수 구워서 차려주실 아침 밥,
우리가 들고 간 도시락 통에 받아서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우리주님도 감동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