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송종남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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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9 14:25
제 아내는 키친에서 쓰는 페이퍼 타월을 눈에 안 띄는 곳에 둡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 놓고 식구들이 함부로 뜯어 쓰지 못하도록 합니다. 식사를 할 때 사용하는 냅킨은 몇 장을 써도 신경도 안 쓰면서 페이퍼 타월은 말 그대로 종이에 불과하고 그저 일회용 소모품일 뿐인데 그것을 함부로 뜯어 쓰면 아껴서 쓰라고 잔소리까지 합니다.
그리고 제 아내가 페이퍼 타월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참 기가 막히기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새로 뜯은 깨끗한 페이퍼 타월을 가지고는 그릇의 물기를 말리는데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번만 쓰고 버리지 않습니다. 아깝다고 하면서 그것을 빨아서 마루바닥 같은 곳을 닦는 데 사용합니다. 그리고나서도 그것을 버리는가 하면 아닙니다. 이번에는 그것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닦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신발 벗는 장소 같이 지저분한 곳을 닦고 나서, 그것이 정말 더 이상 못쓰게 될 정도가 되면 그때서야 그것을 버립니다. 참 이상하기 그지없습니다. 그까짓 페이퍼 타월이 뭐라고, 왜 그렇게 아끼고 또 아끼는지..., 한번 쓴 종이를 빨아가면서까지 사용하고 또 사용하는지...저는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는 아내가 지난 4월에 중국 선교를 간 동안 잠시나마 키친 경험(?)을 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페이퍼 타월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페이퍼 타월은 종이인데도 쉽게 찢어지지 않는 거였습니다. 마치 헝겊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번 사용하고 나서 다시 빨아서 사용해도 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페이퍼 타월의 놀라운 흡수력에 저는 또 한번 놀랐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꼭 페이퍼타월 홍보하는 것 같은데, 물이면 물, 먼지면 먼지...모든 것을 쏙쏙 다 빨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물에 빨아서 먼지 같은 것을 닦으면 페이퍼타월의 그 뛰어난 흡수력으로 먼지나 티끌 같은 것들을 자신의 몸에 다 붙게하는 거였습니다. 페이퍼타월의 그 대단한 흡수력에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부들이 그 흔한 페이퍼타월을 한번만 쓰고 버리지 않고, 빨아가면서까지 다시 또다시 쓰는지, 지난 4월의 짧은 경험을 통해 새롭게, 정말 새롭게 알았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오늘 우리를 있게 하신 부모님들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 가슴에 새기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분명히 기쁘고 좋은 날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날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님 생각을 하면, 오늘은 자식 된 사람들의 가슴이 괜히 먹먹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처럼, 내 자식에게 하는 것만큼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니까, 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해야 할 감사도, 마음의 표현도, 사랑도 다하지 못하고 늘 미루면서 사는 게 우리들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해야지, 나중에 잘 해야지....그렇게 미루기만 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은 곁에 안 계신 것입니다.
부모는 어떤 부모던지 참으로 강합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은 이세상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강함입니다. 아무리 쓰고 또 써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마르지도 않고 헤어지지도 않습니다. 또한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다 받아주십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랑거리이든 흠이든,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자신의 가슴에 다 끌어안고 가십니다. 자식이 아무리 못났어도 밀쳐내지 않습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의 흡수력이란 이 세상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참고 또 참아주시며 우리를 받아주시고 덮어주시고 끌어안아주시는 그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나마 사람구실을 하며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페이퍼 타월에서 저는 메시지 하나를 얻었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닦아주며, 밀쳐내지 않고 끌어안아주는 것, 쉽게 헤지지 않고 강한 것,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의 흡수력 때문에,
오늘 우리가 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