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왔어요."
목소리가 나지막 했다. 그러나 안정감 있고 책임감 있게 들렸다.
아침일찍 공사를 시작했어 나도 일찍 나왔다고 말을 하시며 내게 말을 건냈다.
아침 8시 부터 시작한 성전 페인트 칠하기가 진전이 있어 보였다.
성전 전체는 흰색으로 칠하고 제단의 십자가판 양 옆 벽면만 옅은 회색으로 칠 하라고 했습니다. 라고 내게 보고하듯 말을 했다.
오늘은 성전에 놓을 장의자 회사에서 11시에 오기로 했습니다. 같이 만납시다. 라고 말했다.
연세가 나보다 25세가 많아 말을 놓을 법도 한데 꼭 존대를 했다.
장의자 쿠션색깔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를 꼼꼼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팔순의 나이에 지칠것도 같은데 그의 열성은 메뚜기 먹이 찾아 힘있게 껑충 뛰듯이 여기 저기 공사하는 사람들의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하신다.
스치는 옷깃에 날리는 테이블 위 먼지를 보며 안장로님의 건강을 걱정해 보지만, 그의 태도는 그갓 먼지 때문에 내 할일을 못할새라 아랑곳하지 않고 전기공사가 한창인 부엌이며, 각종 시설물이 잔뜩쌓인 친교실에서 다시 새로 싼듯하게 교체한 예배당으로 돌아와 바닥을 보고 계신다.
사실, 지난해 11월 16일 11시경에 교회에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복구 공사와 낡은 교회 시설물을 다시 교체하자는 의미로 교회 복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복구위원장이라는 중책은 안장로님이 맡으셨다.
교인들이 합심하여 맡긴 직책이라 원로의 연세에도 양보함이 없이 그 무거운 짐을 지신 것이다.
오늘일까, 내일일까 궁금하여 교인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은 '우리교회 언제 들어갈 수 있어요' 인데, 속 시원히 대답 해 줄 수 없는 것은 보수공사라는 것이 무척이나 변수가 많아서 1.2주간 혹은, 한달 연기되는 것이 다반사라 속타는 그의 마음은 발바닥만 불이 날 뿐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것은 1996년 11월 어느때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였다.실버블록의 낡은 교회, 임시로 입주한 신 목사님 사무실에서 였다. 그때는 호케신 교회를 신축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결혼 후 이민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이민국 서류중 결혼식 증서에 보증인 서류의 3명의 사인이 필요해서 였다.
검정색 안경과 50때 초반의 날쌘 검정 머리카락, 힘있는 문체가 말하듯 이름과 사인이 날렵했다.
"건축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세현 장로 입니다." 라는 말이 얼마나 힘이 실려 있던지 교회건물을 들쳐엎을 기세로 느껴졌다. 뚜렷한 감리교인으로써 신앙관과 신실한 하나님 제자임을 자청하는 뚝심이 그후 여러해를 그와 같은 교회를 섬기며 내가 본 그의 대한 나의 소견이다.
점심때가 다가오는지 배곱시계가 허기의 자명종을 울려 주었다. "윤권사님 내가 살테니 식사 하로 갑시다."
안장로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아니 장로님, 이번에는 제가 대접 할테니 한국 식당으로 가시지요. " 나도 질세라 지난번 식사대접의 변재를 하듯 말을 했다.
우리는 식당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음식을 주문했다. 물끄러미 마주 앉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세월이 참 빨라요.' 하며 강원도 말씨가 약간 섞인 어투로 먼저 말을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고 피곤의 내음이 났다.
아침일찍 교회 나와 공사현장의 먼지와 인부들과 나눈 대화로 힘이 소진한 느낌이 묻어 놨다.
'네.' 나는 말이 필요치 않았다.
'내가 요사이 후회되는 것이 있어요 하시며' 과거 본인의 교인 생활에 대하여 세월을 돌아 보듯 자기 성찰의 이야기들을 늘어 놓으셨다. 회개 이기도 했다. 내 나이 벌써 팔십이요. 라는 그의 연세 부름에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의사선생님, 학력의 존재감, 성공한 인생도 나이 앞에 무기력 하다는듯 깊은 숙고가 느껴졌다. 인생이란 세찬 바람이 그의 곁도 그져 스쳐 지나가진 않았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구원의 삶에 동참 되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의 모습이 내 신앙의 좋은 모델로 생각되어 졌다.
살아온 이야기, 신앙 간증에 대한 이야기는 내 마음의 귀를 열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생의 값진 경험을 스스럼 없이 내어놓는 모습이 어린아이가 소풍날 보물찾기에서 선물쪽지를 발견 한 것 처럼 방긋 방긋 웃으시며 말씀을 이어 갔다. 그의 이야기가 꼰대의 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기다리던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빨강 육개장이 먹음직스럽게 테이블 위에 얹혀졌을 때 나와 안장로님은 공격하듯 숫젖가락으로 배를 채워갔다. 날이 쌀쌀하여 국물이 몸 속을 시원하고 따뜻하게 스며 들었다.
당위성과 현실이라는 고민앞에 선 우리의 종교생활.
당연히 성도를 사랑하거나 내 이웃을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사랑하고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돌보고 헌신해야 하지만, 현실이라는 큰 산 앞에 우리는 무기력하다. 현실은 우리의 일상이 바쁘다는 것이다. 돌봐야할 가정, 직장의 바쁜 일과, 부딪치는 수많은 질풍노도의 혼란들을 해결하고 치렬한 경쟁와 싸워야 하는 것이 우리 현대인의 일상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그리고 큰 국가 유색인종으로 부족한 것들을 근근히 채워야하는 하루하루인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헌신이라는 당위성을 선택한 그의 모습이 멋이 있는 것이다. 물론 직업적 당위성의 보상과 종교적 신념의 당위성은 또 다른 것이다. 우리는 신앙심의 당위성을 선택한 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의 순종과 헌신의 알고 있다. 델라웨어 한인 감리교회, 우리교회도 작은 공동체이지만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주의 성전이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도록 헌신하는 주님의 일꾼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많고 은퇴한 사람이라고 현실이 없다는 논리는 무리가 있다. 그도 돌봐야 할 가정이 있고 그를 의지하는 자손이 있을 것이다. 지금 모든 것의 최우선을 교회 복구에 두고 헌신하고 있는 그 모습이 아름다울 뿐이다. 진땀을 흘리며 맛나게 육계장 그릇이 비워졌을때. 우리는 식당벽에 붙은 비닐 벽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회 복구공사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12월 중순에 접어들어 공사의 끝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바닥은 끝이 났고, 향나무 원목 내음의 풍비를 내는 출입구 외벽도 끝이났다. 잘 그려진 실내 인테리어 도면의 안내에 따라 복도와 도서실의 보라색 페인트까지 칠해졌다. 부엌 카운터 탑이 회색의 고급스러운 자태를 내며 자리 잡았을 때, 부엌 후드 설치가 마쳐 가고 있었다. 어제 도착한 화장실 시설물이 설치되고, 부엌의 바닥이 마감되면 끝을 보겠구나 생각하며 교회를 둘러 보는 내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복구위원으로 안장로님을 도우며 교회의 마무리 공사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농부가 수확철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잘 정리된 화단과 하얀 담벼락 펜스, 새까만 주차장 바닥에 잘 그려진 흰색 핸디캡 마크, 새롭게 불을 밝힌 입간판, 새로 설치한 히터는 가벼운 소리를 내며 교회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파킹장에 새워진 차로 가는 나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
교회 복구공사 1년 여정 돌아보며 우리는, 나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무엇일까. 목요일 마다 만나는 복구위원회 모임은 주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였다. 공사가 빨리 진행 되도록 필요한 사항이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짜내었다. 알 수 없는 일에 맞닥뜨려졌을 때, 우린 또 기도 했다. 내겐 주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는 체험의 시간도 되었다. 내가 건물 관리 책임자로 화재로 당황했을 때 신앙의 선배인 안 장로님께 전화를 했었다.
"교회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내가 지금 가겠습니다."
차분한 톤의 그의 외마디 대답은 내 귓전을 아직 맴돈다.
연세드신 동역자들의 삶을 옆에서 바라보며 그들의 삶이, 그들의 신앙여정이 전혀 헛된 시간들이 않 이었음을 볼수 있는 대답이다. 교회 공동체가 어려움이 처했을 때 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스스럼 없이 모여 힘을 보탰다. 교우들이 힘든 일을 당할 때도, 아픔에 처했을 때도 그들은 위로의 말씀과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함께했다. 가족처럼 같이 나누었다.
교회 질서를 유지 하는 평정심, 열성있는 신앙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세, 때가 되어 교회행정에서 뒤로 물러나 후배들에게 양보하는 결단, 아름다운 교회를 2세들에게 넘겨 주어야겠다는 신실하고 솔직한 신앙정신..
이제 좋은 본을 보이고 무대 뒤로 조용히 사라지는 수많은 창립1세대 신앙의 선배들에게 꼭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12월 20일 2022년, 신실한 동역자 안세현 장로님을 생각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