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다시 보고 왔습니다”
송은순
아이티 선교에 동참하는 것은 내게는 큰 축복입니다.
몇 년 전에 대학부 학생들과 처음 그 곳에 갔을 때, 대부분 처음 그 곳에 가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저도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쓰레기라는 쓰레기는 그곳에 다 모아 다 놓은 것처럼 온갖 오물과 쓰레기 더미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사람이 이렇게도 살수 있구나’...한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답답함이었습니다.
지저분한 거리를 걸으며,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고아원의 꼬마들을 만나며 하염없이 눈물이 났지만,
그 곳에서는 눈물도 사치 같아서 눈물조차 마음껏 흘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몇 번 또 그곳에 다녀와서 받은 감동과 은혜를 내 자리로 돌아 온 후, 어떻게 살겠노라는 결심에 담았었지만,
그 약발은 늘 그리 오래 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게 편하고 풍부한 내 자리로 돌아오면 이 모든 것에 휩 쌓여서 아이티에서의 결심 같은 것은 생각조차 안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매년 아이티 선교팀에 사람들을 푸쉬해서 함께 가게하고, 때로는 나도 참여하고 하면서...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곳은 우리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물질도, 사랑도, 도움도 다...우리는 주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받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그곳을 방문하고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오히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열악하고, 여전히 필요한 것이 많고, 그래서 여전히 많은 도움이 필요하고, 가슴이 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서 사라져 가는 것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목마름, 간절함, 살아 있는 찬양, 뜨거운 기도, 외침, 손뼉, 기쁨의 환호성, 주님만이 오직 도움이라는 고백, 가장 좋은 옷을 차려 입고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 진심으로 교회를 아끼고 섬기는 모습...
같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며, 교회를 다니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그분들의 모습과 나는 왜 이렇게 다른가?
나에게 있는 것들은 왜 이렇게 추상적이고 막연한가?
왜 이렇게 힘이 없는가? 왜 이렇게 조용한가?
왜 하나님 앞에서 조차도 남을 의식해야하는가?
왜 울면 안 되고, 왜 소리치면 안 되고, 손벽을 치며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게 왜 쑥스럽단 말인가?
예배는 왜 숨소리조차 안들리게 조용해야만 하는가? 진짜 깨끗하고 더러운 곳은 어디인가?
무엇이 진짜 고상함이고 거룩함인가...? 수 많은 질문들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언젠가 아이티는 감히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사람들을 살리는 곳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럽고 추하다고 고개를 돌리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살렸습니다.
아이티는 저를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곳이고, 감히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적으로 무기력해지고 나태해지고 교만해진 나 자신을 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가 서게 되면, 그 곳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믿어서도, 이렇게 살아서도 안 되겠다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천둥처럼 들려옵니다.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와서 아이티를 생각해 봅니다.
이번 아이티 선교, 팀웤도 좋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그 땅의 어마어마한 일들을 보면서, 선교사님의 삶을 보고, 또 이미 이루어진 일들과 진행되는 일들에서, 그리고 함께 간 동료들이 흘리는 땀방울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 바자회 직 후라서, 피곤했던 육신이었는데 이곳에서도 먹기 힘든 음식까지 가지고 가서 섬기신 손길로 인해 더 건강해져서 돌아왔습니다.
받은 은혜로 인해 몸도 마음도 영혼도 이전보다 더 건강해서 돌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아이티는 나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게 하는 거울입니다.
나에게 무엇이 묻어 있는지, 어디가 더러운지, 무엇을 닦아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게 해줍니다.
이 곳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곳에서는 보이며, 이곳에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그 곳에서는 들립니다.
함께 갔던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이 Before Haiti 와 After Haiti로 바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다시 거울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삶이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지기를 날마다 기도하며 재촉합니다.
저의 일상에서 그 거울을 보고 또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