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느리다고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송종남목사 0 8,960 2011.07.06 04:32

 새로 이사한 집에 설치한 인터넷이 무척 느립니다. 지금까지 쓰던 인터넷 회사의 케이블이 이 이사한 동네에 아직 들어와 있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인터넷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너무 늦게 작동하니까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다른 인터넷 회사로 바꾸면 어떠냐고 아내에게 물어보았더니 ‘늦는 것도 좀 참아 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나니 몇 년전에 읽었던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상소가 쓴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라는 책 제목이 떠올라서 다시 그 책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모두 다 ‘빨리 빨리’를 지향하고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현대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책입니다. 신속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고, 느린 것은 곧 모자람, 게으름, 뒤쳐짐으로 단정 짓고, 그래서 남보다 빨리, 앞서 가려고 안달복달하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책입니다. 저자는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것으로 꿈꾸며 그렇게 바쁘게 달려가지만 그러나 그들은 영원히 뭔가 결핍 된 듯한 갈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끝없이 바쁘게 살아갈 뿐이고, 그렇게 살다가 결국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느림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력감이나 나태함, 뒤로 쳐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와 사려 깊은 삶의 방식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시간 없다, 바쁘다’ 를 외치며 살지만 정작 왜 바쁜지를 모르는 우리들이 밀려드는 시간에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쁜 시간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 나를 성찰하며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바쁘게 살아오면서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고, 삶의 순간순간을 제대로 느끼고 살아가는 능력을 저자는 느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크게 공감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느새 2011년의 6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요즘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시간이 너무 빠르네요. 어느새 일년의 절반이 다 지나갔는데 나머지 절반은 또 얼마나 빨리 지나 갈까요’ 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사실 하루하루 잘 살아보려고 애는 써보았지만 곰곰이 뒤돌아보면 허둥지둥, 시간에 밀려가면서 쫓기듯 산 듯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읽고 싶은 책들도 수두룩하게 쌓여 있는데 쌓아 놓기만 하고 제대로 읽지도 못했고, 좀 차분한 마음으로 성경 책 한권만 들고 골방에 푹 파묻혀서 몇일 동안 성경만 읽으며 지내고 싶기도 했지만 그저 설교준비에 급급한 성경 읽기였으며, 또 늘어만 가는 주변의 잡다한 것들도 간직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그때그때 정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것 역시 뒤로 밀어두고, 박스 박스 담아두기만 하며 산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에는 생각하고 느끼고 좀 더 여유를 갖고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들이 널려있는데도 ‘오늘은 바쁘고 피곤하잖아, 다음에도 시간이 있어’ 하면서 늘 흘려버리고 놓치고 살았던 것 같아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기억력이 점점 없어지고 이러다가 치매에 걸리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인데, 기억력이 없어지는 이유도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이 할 일을 입력만 시키면 척척 신속하게 알아서 해주는 기계에 의존해 살면서 그렇다면 인간은 더 시간이 남고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할텐데, 오히려 인간이 모든 일을 할 때 보다 더 바쁘고 더 시간이 없다고 아우성이니... 뭐가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피에르 상소가 시간에 쫓기듯 살지 않기 위해 권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발걸음이 닿는 대로 한가로이 걸어보라는 것입니다. 걷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 걷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걸으면서 나의 내면도 들여다 보고, 꿈도 꾸어보고, 생각도 해보고 주변도 둘러보고, 기도도 하고...천천히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를 성찰하는 아주 좋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느리다고, 천천히 간다고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느림속에는 삶의 여유가 있고 부드러움과 우아함이 있습니다. 늘 바쁘다는 체면에서 벗어나서 동네 한바퀴라도 한가로이 걸으면서 하늘도 보고 사람도 보고 나도 들여다보는 여유를 발견했으면 합니다. 우리 집 인터넷이 좀 느려도 참아보겠습니다. 의미가 좀 다를지 모르지만, 천천히 살아가도 결코 뒤처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훈련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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