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첫 열매

송종남목사 0 9,207 2013.07.09 13:18

목회란 ‘성도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것’ 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저에게는 맞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첫 목회를 경기도 가평으로 나갔었습니다. 교회에서부터 버스가 지나다니는 길까지 가려면 걸어서 30-40분 걸리는 산골짜기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장작으로 불을 때서 방을 덥히고, 화롯불에 된장찌개를 끓여 먹던 곳이었습니다. 동네 이름도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뜻의 ‘우무동’ 이었듯이, 18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서 하늘에서 내리는 천연의 은혜만을 먹고 사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그곳으로 처음 부임하던 날, 교회 사택 옆에 살던 할머니 권사님은 새 전도사님이 온다고... 쓸어도 표시도 나지 않는 그 산골길을 빗자루로 일일이 다 쓸었다고 하셨었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감동 뭉치로 가슴을 콱 채우면서 시작된 그곳의 목회는 월 사례비가 6만원이었지만, 세상에서 통용되는 기준으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부유한 목회였습니다. 철철이 성도님들이 날라다 주시는 푸성귀만 해도 임금님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밥상으로 배가 불렀었습니다. 

         

더욱 우리를 감동시켰던 것은, 밭에서 가장 처음 딴 것, 산에 가서 가장 처음 따온 것을 가져다 주실 때였습니다. 처음 딴 것이라 어떤 것은 튼실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꼬부라진 오이며 가지, 그리고 벌레가 먹은 과일까지, 지실이 바짝 든 것이라 해도 어쨌든 처음 거둔 열매라고 가져다 주셨습니다. ‘첫 열매’ 는 하나님의 것인데 ‘주의 종님’(종에게도 님자를 붙이셔서)에게 드려야한다는 그분들의 믿음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표시인 첫 열매를 받아먹을 때마다 제가 과연 이것을 받아먹어도 되나...하면서 많이 과분하고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성도들의 사랑과 정성을 배불리 먹으면서 목회를 하다가 미국으로 와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첫 열매’ 전통이 미국까지 고스란히 와 있는 것을 보면서 또 다시 감동을 받습니다.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이곳에서는 마켙에서 모든 것을 사먹으니까 감히 밭에다 무엇을 심어 먹는 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어디다 심으셨는지 직접 심어서 거둔 첫 열매라고 하면서 가져다 주시는 것들을 받을 때마다 늘 가슴이 뭉클뭉클 합니다.

엊그제도 어떤 분이 첫 열매라고 오이며, 고추, 깻잎, 호박을 주셨습니다. 오이 중에 하나는 완전히 꼬부라져 있었지만 ‘가장 처음 딴 것이라 드린다’는 말이었습니다. 잘 생기고 튼실한 오이보다 꼬부라진 오이에서 전해져오는 감동이 더 컸습니다. 아내는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그 감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목회는 성도님들의 사랑과 정성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감히 제가 하나님도 아닌데 어떻게 첫 열매를 받아먹을 수가 있나요. 그런데도 성도님들은 그런 정성을 쏟아 부어 주시니 늘 마음 불편한 감사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저에게 날다다 주시는 그 정성과 사랑은 곧 하나님을 향한 그분들의 믿음이요 정성이라는 것을요. 그분들의 기도라는 것을요.
그래서 그런 것을 받아먹을 때마다 저도 기도합니다. ‘그렇게 제게 주시는 성도님들의 과분한 사랑, 분에 넘치는 정성을 저도 목회에 쏟아 부을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첫 열매를 가져다 주시는 그분들의 믿음의 표현을 주님께서 받으시고 그분들의 가정과 직장과 자손들을 마음껏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며 먹습니다.

지난 27년 동안 성도님들의 그런 정성과 사랑, 기도, 마음을 먹은 탓에 저는 오늘도 행복한 목회를 합니다.
마음이 부자인 목회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도님들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첫 열매’, 참 가슴 떨리는 사랑입니다.
이 떨림과 감동으로 늘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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