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날마다 새로운 길

송종남목사 0 8,935 2011.10.0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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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는 산책을 하기에 좋고 아름다운 길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잘 가꾸어진 크고 작은 공원들은 물론이고,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 된 State Park도 집 가까이에 몇 개나 있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큰 혜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 봄에 Brandywine State Park에 다녀온 아내가 어찌나 그 곳이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설명을 하던지, 당장 State Park Parking Permit을 사서 차에다 붙이고 몇 번 그곳에 갔었습니다. 늘 딱딱하고 고정된 시멘트에 파묻혀 사는 우리들인데 그곳에서는 흙을 밟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아름들이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팔을 벌리고 치솟아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평생 쌓였던 스트레스와 체증이 한방에 날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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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지난 초여름에 어떤 분이 우연히 North Point 동네 뒤로 난 숲속 길도 산책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러 보았는데 저는 세상 말로 한방에 뿅 갔습니다. (저를 촌스럽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아 좋다, 정말 좋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곳이 있나 ’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쭉쭉 뻗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것은 물론이고, 숲이 어찌나 우거졌는지 한낮에도 하늘의 해가 땅에 닿지 않았습니다. 하루종일 초록색 그늘로 덮여 있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숲속만 통과하면서 숲이 끝나는 지점까지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면 꼭 한 시간정도 걸렸습니다. 산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코스가 없다 싶어서 날마다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더더구나 그 길이 좋은 것은 길섶에는 옛날 한국에서 보았던 찔레, 엉겅퀴, 둥글래, 질경이, 고양이 시금치, 제비꽃, 달개비꽃, 메꽃, 달맞이꽃...온갖 산초와 들꽃이 때를 따라 피어났습니다. 풀과 꽃 이름을 제대로 다 알 리가 없지만, 그러나 고국산천에서 익히 보아왔던 것들이라 마치 고향 사람들을 만난 듯이 반가웠습니다. 초여름에는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찔레꽃 향이 온 숲속에 진동했습니다. 세상에 어떤 향수가 그렇게 은은하고 고상한 향을 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는 산딸기까지 줄기줄기 맺혀서 이른 아침, 이슬 머금은 산딸기를 한 움큼씩 따 먹으며 걷는 즐거움까지 더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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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밑으로는 아주 맑고 시원한 개울물까지 졸졸졸 소리 내며 흘러갑니다. 이름 모를 새와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는 날마다 새벽 숲을 깨워 줍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들르면 밤새 나무들이 토해놓은 신선한 산소가 숲속가득 우리를 기다립니다. 어떤 병, 어떤 스트레스라도 이 공기만 마시면 다 치유 될 것 같고 회복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답고 환상의 산책로인지 아마 당장 가보고 싶으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길만의 특성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길은 일주일에 두세번 가는데도 그 길 모양새를 잘 기억 할 수가 없습니다. 보통 길은 몇 번만 가면 어디서 구부러지고 어디가 평평하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저절로 다 외워지는데 이 길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앞이 훤히 보이도록 쭉 뻗은 길이 아니고 구불구불한 길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이십여 발짝만 가면 길이 구부러지고, 또 조금 가면 길이 다시 구부러져서 걷고 있는 방향의 앞길이 훤히 내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평평하다가도 금방 언덕이 나오고, 조금 편한 길이다 싶다가도 또 힘을 북돋우고 걸어야하는 숨찬 길이 나오기를 반복합니다. 신기한 것은 매일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라도 날마다 모습과 색깔이 달리 보입니다. 숲속에서 나는 향기도 날마다 다릅니다. 몇일만에 가면 한번도 와 본적이 없는 새로운 길을 가는 듯,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아니, 매일 가도, 날마다 새로운 곳에 온 것처럼 느껴지는 게  바로 이 길의 매력입니다.   

     저는 요즘 North Point 뒤로 난 숲속 길을 걸으면서 우리네 인생을 많이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 매일이 같은 날 같지만, 사실은 날마다 새로운 날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을 훤히 다 내다보며 다 알고 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누군가 인생이란 등불하나 들고 그 등불이 비추는 테두리 안에서 한발짝 한발짝 걸어가는 거라고 말했듯이, 내일 일을 모르고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또 인생을 살다보니 평안 할 때도 있지만 고비를 넘어야 할 때도 많습니다. 편한 길도 있지만 숨이 차서 헐떡이며 허리를 졸라매고 긴장해야 하는 때도 많습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 조차도  매일 다른 느낌과 감동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우리들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모양과 느낌으로 다가오는 North Point 숲속 길은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 받고 사는 우리에게 많은 얘기를 전해주는 길입니다. 그 길엔 벌써 낙엽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떨어지는 낙엽 색깔이 너무나 곱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 남겨진 시간도 늘 주님과 동행하므로 그렇게 곱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그 길을 걸으며 다시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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