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우리들의 “써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송종남목사 0 8,799 2011.09.03 08:53
유난히 무덥고 칙칙했던 올 여름, 한국 영화 한편이 한국 사람들, 특히 중년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마침 필라델피아에 “써니‘라는 그 영화가 들어왔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화려한 외출을 했습니다. 큰 기대는 안하고 갔지만 미국 영화관에서 보는 한국 영화이기 때문에 반갑기도 했습니다.

    전라도 벌교에서 전학 온 나미는 사투리 때문에 첫날부터 여고생들의 놀림감이 됩니다. 이때 범상치 않은, 소위 노는 친구들이 어리버리한 촌뜨기 나미를 도와주는데, 그들은 의리파 춘화, 쌍까풀에 목숨 건 못난이 장미, 욕 잘하는 대표주자 진희, 문학소녀 금옥, 자나 깨나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복희, 그리고 도도한 얼음공주 수지입니다. 이 일곱 명의 단짝 친구들은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는 맹세로 칠 공주 동아리를 결성하는데, 당시 한창 한밤의 인기 음악프로 DJ였던 이종환씨에게 친구들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고 그 칠 공주들의 동아리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는데 ‘써니’라고 지어주는 대목도 나옵니다. 칠 공주들은 ‘써니’를  결성하고  학교축제 때 선보일 공연을 야심차게 준비하지만 축제 당일, 뜻밖의 사고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로부터 25년 후, 잘 나가는 남편과 예쁜 딸을 둔 평범한 주부, 나미지만, 왠지 늘 마음 한구석 허전함을 느끼며 삽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써니 짱’이었던 춘화와 마주친 나미는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써니’ 멤버들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는데… 가족에게만 매어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추억 속 친구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그들 인생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계절이었던 여고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을 떠올리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자신과 만나게 됩니다.

    써니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80년대를 오가며 회상하는`추억`에 초점을 맞추어 만든 영화입니다. 그저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며 자식걱정, 남편걱정, 생활 걱정에 찌든 아줌마들인 줄만 알았는데 옛 추억 한 자락 꺼내보면서 그 아줌마들은 어느새 다시 자기 인생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행복해 하는 기운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까지 전달돼 옵니다. 특히 40대 이상 중장년층들이 이 영화에 빠져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영화의 내용도 특별한 게 없고 그저 평범한 아줌마들이 패러디하는 몸짓을 보며 간간이 가볍게 웃기기도 하는 영화인데, 저는 영화를 다 보고나오며 나도 몰래 한마디 이렇게 중얼 거렸습니다. “아, 내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아마 이 영화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고 먼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게 되는 이유는 이것인 것 같습니다. 그저 사는데 바빠서 옛 친구들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왔는데, 이제 나이 40, 50 60을 넘기고 보니까 어느 날 문득 친구들 생각이 나는 겁니다.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겁니다. 그때 그 시절 어쩌면 가장 혼란스러웠고, 가장 힘들었었고, 가장 놀고 싶었던 그 시절에, 그래도 그 친구들 때문에 그 혼란의 시기를 잘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지금 그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
    고교시절이 입시지옥이다 뭐다 해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써니’ 라는 말처럼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계절,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뒷골목에서 양은 냄비에 라면 하나 시켜놓고도 꿈을 노래했고 거창한 미래를 설계했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라는 촌스런 구호아래 똘똘 뭉쳐 몰려다니며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그 친구들, 지금은 어디 있을까 ? 무엇을 할까? 불현듯 그 친구들이 보고 싶어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집니다. ‘친구야 보고 싶다’ 이 중얼거림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 영화가 바로 써니입니다.
    제 아내는 이 뻔한 스토리의 영화를 보며 눈가가 촉촉해 졌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잊고 지냈던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추억 속의 친구들 생각에 아주 행복 해 보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제 아내 같은 사람들이 어디 한두 사람이겠습니까?

친구가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더구나 오래 묵은 친구는 더더구나 좋습니다.

기쁨도 어려움도, 속마음도 겉모습도 숨김없이 다 내놓을 수 있었던 친구들, 그런 친구들이 막 보고 싶어집니다. 지금 우리들의 ‘써니’는 어디에 있을까? 이 가을에 추억여행 한번 떠나보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살기가 팍팍해도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아름다운 추억, 좋은 친구들 생각하면서 잠시라도 시름을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올 가을은 그리움, 추억, 친구들...그런 생각하며 모두 행복해 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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